
인텔 주가는 최근 수년간 TSMC, 엔비디아, AMD 대비 부진했다. 2021년 790억 달러였던 인텔의 매출은 2024년 530억 달러로 급감했으며, 2024년에는 188억 달러의 연간 순손실을 기록하여 1968년 창립 이후 최대 손실을 냈다. 이는 인텔이 AI 붐에 뒤처지고 AMD에게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며,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TSMC에 크게 뒤처진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이 인텔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텔이 미국 내에서 첨단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유일한 기업이라는 점이다. 전 세계 반도체 제조업계에서 TSMC와 삼성이 압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들은 대만과 한국에 위치해 있다. 미국 내에서 첨단 로직 반도체의 연구개발부터 제조까지 전체 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은 인텔뿐이다.
이러한 현실은 미국의 국가안보와 직결된다. 현재 전 세계 첨단 반도체의 90% 이상이 대만의 TSMC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이는 미국에게 치명적인 취약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거나 봉쇄할 경우, 미국의 국방시스템부터 AI 산업까지 모든 것이 마비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는 2025년 8월 22일 역사적인 결단을 내렸다. 주당 20.47달러에 433.3백만 주, 총 약 89억 달러 규모를 매입하면서 전체 지분의 9.9%를 확보한 것이다. 이는 당시 종가 24.80달러보다 약 4달러 할인된 가격으로, 인텔의 단일 최대 주주로 올라선 것을 의미한다.
이 자금은 원래 CHIPS Act 보조금 57억 달러와 국방부 Secure Enclave 프로그램 지원금 32억 달러로 집행될 예정이었으나, 현금 지급 대신 인텔 주식 취득으로 전환되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수동적(passive) 투자자"임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5년 만기 워런트(행사가 20달러, 추가 5% 지분 확보 가능)도 손에 쥐었다.
새 CEO와 고전하는 파운드리
변화의 또 다른 축은 리프-부 탄(Lip-Bu Tan) 신임 CEO다. 그는 2025년 3월 취임과 동시에 “14A 공정은 외부 고객 확보와 연동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다시 말해, 고객을 먼저 데려와야만 인텔은 차세대 첨단 공정에 본격적으로 투자한다는 것이다.
14A 공정이란 인텔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1.4나노미터급 차세대 제조공정을 말한다. 현재 인텔이 2025년 하반기 양산 예정인 18A(1.8나노미터)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기술로, 2027년경 양산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다. 이 공정의 핵심은 High-NA EUV 리소그래피 시스템이라는 최첨단 장비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기존 장비보다 훨씬 정밀한 패턴 형성이 가능하지만, 장비 한 대당 수백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이런 신중한 접근은 현실적인 선택이다.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은 2024년에만 약 130억 달러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대규모 현금 블랙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전체 매출도 531억 달러로 전년 대비 2% 감소한 상황에서, 구조적 개선 없이는 장기 생존이 위태롭다.
여기에 오하이오 신규 공장 건설도 발목을 잡고 있다. 원래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최근 일정이 2030~2031년으로 대폭 미뤄졌다. 단기적으로는 투자 부담이 줄어 재무에 숨통이 트였지만, 미국 내 생산 기반 확충이라는 전략적 과제는 뒤로 밀린 셈이다.
정부 지분이 가져올 명암

미국 정부가 최대 주주로 나선 것은 인텔에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 긍정적 측면: 정책 지원으로 단기 유동성 위기를 피하고, 일정 부분 주가 하방을 방어한다. “20달러 정책 바닥”이라는 인식은 트레이더와 기관 투자자에게 분명한 심리적 버팀목이다.
- 부정적 측면: 인텔 스스로도 공시에서 인정했듯, 미국 정부 지분이 국제 판매와 해외 보조금 접근성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 EU, 한국 등 주요 거래국이 인텔을 ‘미국 정부 회사’로 인식할 경우 반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이번 투자는 인텔에 “정책적 바닥”을 만들어주었지만, 동시에 글로벌 영업 리스크라는 새로운 그림자를 드리운 셈이다.
투자자의 관점
투자자라면 인텔을 어떻게 봐야 할까?
- 단기(전술적) – 정부가 주당 $20.47로 대량 매수하였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20 부근이 심리적·정책적 지지가 된다(정책 풋). 다만 ‘수동적’ 소유라 하더라도 대외정책·외국 정부 반응으로 주가가 더 떨어질 가능성은 존재한다.
- 중기(실행력) – 관건은 14A 공정과 외부 고객 확보다. 고객 계약 발표는 주가 리레이팅의 핵심 촉매가 될 수 있다. 고객 확보가 성공하면 파운드리의 구조적 전환(매출 성장/마진 개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장기(리스크 관리) – 파운드리 적자 구조와 해외 매출 의존도, 그리고 정부 지분으로 인한 외교적 파장까지 고려해야 한다. 성공한다면 ‘정책 + 기술’의 강력한 결합이 되겠지만, 실패한다면 희석과 구조적 부진이 겹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결론
인텔은 지금 정책, 기술, 시장이 교차하는 드문 분기점에 서 있다. 정부 지분은 단기 안전망을 제공하지만, 장기 가치는 여전히 경영진의 실행력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용성에 달려 있다. 투자자는 “정책 바닥에 기대되지만, 진정한 알파는 고객 확보와 기술 실행에서 나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