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미국 정부가 양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구제금융 투입을 단행하면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진정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가 ‘하드 랜딩(경착륙)’만 하지 않는다면 이르면 올 4분기(10~12월)부터는 세계 경제가 회복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일보는 8일 판강(樊綱·55·사진) 중국경제체제개혁연구회 국민경제연구소장과 단독인터뷰를 갖고 세계 경제와 올림픽 이후의 중국 경제,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을 들었다. 판 소장은 중국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미국 경제 최악의 상황 아직 통과하지 않아”
판 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촉발된 금융 위기가 끝나기까지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새벽 발표된 모기지업체에 대한 구제금융 투입에도 불구하고 미국발 금융위기가 아직도 ‘최악의 상황’을 지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올 2분기(4~6월) 미국 경제가 3.3% ‘반짝 성장’하는데 성공했지만 정보기술(IT) 분야를 중심으로 소비 침체가 심화하고 주택 경기의 침체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판 소장은 미국 경제는 올해 2%, 내년 1%의 저(低)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며 심각한 경기침체에는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이 세계 최대의 소비 국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 경제가 심각한 침체 상태에 빠지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미국발 경기둔화(slowdown)는 아시아 국가의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그는 최근 유럽과 일본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경기 침체에 빠진 현실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세 가지 축인 미국, 일본, 유럽의 경기가 급속도로 둔화되는 상황에서 수출 비중이 높은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도 상당한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 ‘경착륙’은 없다”
판 소장은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가 경착륙(hardlanding)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올해 중국 경제가 10%에 육박하는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내년에도 9% 성장은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그는 “중국 경제는 이미 경착륙 시나리오를 벗어나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몇몇 분야의 ‘과열’은 있지만 중국 정부가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한 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에 심각한 형태의 ‘버블(거품)’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각한 형태의 버블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경착륙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 소장도 중국의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는 숨기지 않았다. 과거 12%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을 구가해온 중국의 성장률이 8~9%로 떨어졌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의 반증이라는 의미다. 성장률 기준으로 3~4%의 하락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심각한 경기 과열에 따른 경착륙 시나리오는 없다는 얘기다.
판 소장은 “올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6% 이하로 낮아지고, 연말이면 5% 이하로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시장에서 유가와 곡물가, 동물 사료값 등이 하락하고 있는 데다 긴축적인 통화정책으로 통화량 증가율도 연간 17%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 정부가 지난 7월 경제정책의 방향을 ‘량팡(兩防·경기과열 방지 및 물가급등 억제)’에서 ‘이바오이쿵(一保一控·경제성장 유지 및 물가급등 억제)’으로 전환한 것은 옳은 노선”이라고 말했다. “2004년 이후 지속돼온 과열방지대책이 그동안 효과를 발휘해왔지만 현재는 물가상승률이 높은 상황에서 수출성장률 감소로 성장률이 하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정책 노선을 변화시킨 것”이라는 게 판 소장의 설명이다.
판 소장은 중국 위안화 환율에 대해서는 “추가 절상(가치 상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위안화는 연간으로 보자면 미 달러화에 대해서는 강세(가치 상승)을 보였지만, 일본 엔화나 유로화에 대해서는 약세를 기록했다. 왜냐하면 미 달러화가 일본 엔화나 유로화에 대해 워낙 빠른 속도로 평가절하(가치하락)돼 중국 위안화가 이들 통화의 평가절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 소장은 “현재의 중국 환율 체제를 변화시킬 필요는 없고, 급격한 평가절상도 필요없다”고 강조했다. 수출 기업 등이 환율의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중국의 경기둔화는 한국 수출에 악영향
판 소장은 “중국 경제의 둔화는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하이테크(첨단) 산업과 정보기술(IT) 수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여행 등 서비스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중국의 경기 둔화가 한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왜냐하면 중국의 경기둔화 ‘강도’가 심각한 상황은 아닌데다, 중국 경기둔화의 대부분이 부동산, 인프라스트럭처(사회적 생산기반) 등 비교역재 부문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수출 품목과 직접적인 연관 관계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발 경기둔화에 따른 중국 소비 위축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판 소장의 판단이다. 판 소장은 “현재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외한 나라의 경제 상황은 모두 괜찮다”며 “미국발 금융위기 등으로 인해 다소 어려움을 겪겠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 ‘9월 금융위기설’은 허구”
판 소장은 최근 한국에서 ‘9월 금융위기설’이 나돌고 있는 원인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단기 외채’가 증가하자 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의 금융부문은 강력한 구조개혁을 단행해 훨씬 건강해졌다”며 “외국인이 단기간에 자금을 빼나가면서 한국 경제가 위기로 치닫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근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대의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해서 쓰는 상황에서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는 현상은 어떤 측면에서는 당연한 것”이라며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통해서 물가 상승률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원·달러) 환율이 최근 한달 남짓한 기간에 10% 넘게 평가절하된 것에 대해서도 “시장이 과민반응한 것이며 자체 조정을 통해서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판 소장은 “최근 원·달러 환율 폭등은 한국의 단기 외채 급등에 대한 시장의 과민 반응과 투기적 요소가 결합된 것이기 때문에 조만간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중국의 과거 30년과 미래 30년 총정리하는 작업을 진행중
판 소장은 요즘 중국 경제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아 과거 30년 동안 중국 경제정책의 변화상을 집대성하고 미래 30년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그동안 중국 경제가 걸어온 길에 대한 총체적인 정리 작업과 향후 30년간 어떻게 가야 하느냐를 집대성하는 ‘야심적인 프로젝트’다.
그는 또 중국의 재정 개혁 정책을 재수립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중국 재정 정책의 현주소는 “중국 경제는 그동안 대외 무역에서 국내총생산(GDP)의 15%의 흑자를 보고 있지만 중국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판 소장의 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국가는 살찌고 있지만 국민들의 호주머니는 점점 더 비어가는 중국 경제의 현주소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겠다는 뜻이다. 판 소장의 말은 앞으로 중국이 ‘수출 대국’뿐만 아니라 내수 시장도 확대함으로써 미국처럼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혔다.